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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및 봉사활동

선교 | 만남 - 정 병 산 선교사 -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3-02-06 18:29

본문

그대는 다른이들에게 어떤 만남을 제공하고 있는가? 나의 입장과 신앙과 행동야익, 삶의 철학, 돈 씀씀이가
다르고 인종, 언어가 다른 집단에 지적, 정서적, 육체적 장애가 있는 분들에게 도움과 이해와 관용을 베푸는
자인가? 고국의 아름다운 순천만에 문학관에 방문했을 때 내 가슴은 뛰었다.

소설가 김승옥(무진기행), 정채봉과의 오랜만의 정신적인 만남이어서였다.
'내 눈시울에도 물기가 배었다.' 작가 정채봉씨는 동심이 세상을 구원한다고 했다.
시인 워즈워드도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라 했지 않는가!
'가장 시간이 아까운 만남은 지우개 같은 만남이다. 금방의 만남이 순식간에 지워져 버리니까.'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손수건 같은 만남이다. 힘이 들때는 땀을 닦아 주고 슬플 때는 눈물을 닦아 주니까."
'당신은 지금 어떤 만남을 가지고 있습니까?  - 정 채 봉 <만남> 중에서 -

조선의 과학자, 천문학자 천민출신 장영실 그는 "남근을 짤라서라도 임금(세종) 곁에 있겠다." 고 그는 충성심
으로 임금 등에 난 종기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냈다 한다. 허나 주군은 사대부들의 모함과 압박에 그 충신을
임금의 수레가 부서줬다고 파직하고 내친다. 장영실이 만든 측우기를 '명나라 하사품'이라 둔갑시켜 버린다.
그래서 그도 임금을 버리고 자신의 별을 찾아 떠난다는 연극 '궁리'가 보고 싶다.

시대는 바 杵(저) 解(해) 변했다하나 이 시대에도 수 많은 또 하나의 다른 장영실이 존재하는 시대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순수한 신실한 무리들이 정치적 논리와 구조안에 교권주의, 학벌주의, 족벌체제, 지방색,
편파주의, 영웅주의, 인종차별주의, 계급화된 냉정한 조직화된 체계속에서 권력 앞에 손을 들고 만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우상 앞에 무릎을 굽히지 않는다.
"나는 당신의 견해에 반대한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견해를 지킬 수 있도록 투쟁할 것이다." 라고 한 볼테르는
자기와 다름을 제거해야 할 미움, 살생부 명단에 올리는 게 아니라 함께 어울러져가야하는 대상으로 한
인간개체로 존중하는 관용의 정신을 시사한 말이다. 판에 짜진 듯 조직 속에서 기호화되가고 단자화 된 삶을
살아가는 듯한 나 자신에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내 자신에게 스스로 주님의 채찍을 내리친다.
난 흑두루미라기보다 외가리란 생각이 든다.
프랑스 오베르시르와즈(Auvers sur Oise)에서 <까마귀 나는 밀밭>을 그린 그 곳.
시대상 이해하지 못한 그의 걸작품 1500여점의 작품 중 오로지 단 한점만 팔린 무명의 외로운 화가. 그를 이해
하고 격려해준 꼬마 친구 카밀.. 외로워썬 반 고흐의 인상파의 개척의 길은 쉽지만은 않았었다.
포용과 관용의 폭보다는 짜르고 교제권을 피하려는.. 그러면서도 갈등하는 이중성의 나자신을 보면서 나도
속이 좁은 속물이란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아무나와 어울리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용납합이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주여 내 혀를 글솜씨가 뛰어난 서기관의 붓끝과 같게하소서" - 시편 45:1.
아부와 거짓이 없이 남들을 대하고 배우고 가르치는 자가 되게 하소서.

뻘 속을 기어다니는 짱둥어를 본적이 얼마만인가. 어릴 적 고향에서 친구들과 잡았던 눈이 불쑥 튀어난 고녀석이
귀엽다. 도둑게, 농게, 칠게가 기어다니고 죽은 갈대의 군락사이로 우아하게 총총히 솟은 갈대의 휘날리는 음악
소리며 상큼한 바닷 내음이 내 가슴에 밀려온다.
일년에 일곱번이나 색깔을 바꾸어가며 서식하는 칠면초..
담에 고국가면 꼬옥 순천만으로 달려가리라. 그리도 상황에 잘 조화하는 칠면초의 변화 무쌍한 삶의 지혜를 배우러
말이다. 그때 즈음에는 무슨 색깔로 날 맞이할지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안개낀 산자락을 따라 운치있는 백운산을 더듬고 화개장터를 지주 최참판댁 들판을 거닐며 '보리밭 사잇길로..'를
노래하며 다시 걷고 싶다.
시장하여 고향 선배와 나눈 제첩국. 거기에 소풀(정구지, 부추라고도 한다)을 넣어 한 그릇 뚝딱 해치웠다. 국물
좀 더 달라 했더니 멀리서 왔다고 제첩을 듬뿍담아 내온다. 노래로만 듣던 섬진강의 백사장... 토지의 '서희와 길상'
평사리, 피아골... 아름다운 조국의 산천이여. 내 이리 늦게야 그 땅을 찾아와서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다른 방도가 없어 다시 속죄하는 마음으로 거길 찾으리라. 그땐 아내와 함께.
전어축제 때이면 좋으련만. 벚공이 피일적이면 더욱 좋을  텐데. 매화, 산수화, 진달래, 철쭉이 필무렵에 가야
꽃잎을 따 먹을 수 있을 텐데... 아니야 구정이 지나 경칩때 고로쇳물을 마셔 위장을 청소한다는 데..
그때를 맞추어 가서 한말 정도 배가 터지게 마셔 내 옹졸해져가는 좁은 속마음을 홀라당 뒤집어 버리게 그
시기를 맞추어야지.. 아니 그러다가는 아예 백운산에 집을 한 채 지어야 할 판이다. 섬진강 550리 물길이 나를
유혹하는 소리에 귀가 쫑긋 해진다.

사역지로 돌아와서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냉정해야 져야 한다. '나의 삶은 갈등'이라고 한 넬슨 만델라의 말은
나의 고백이기도 하다. 어떻게든 문화가 다르고 외로운 현지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문화의 다름을 이해하고 포용
하고 인내하고 눈을 감아야 한다. 분노라는 이름의 난로가 불이 펄펄 끓어오름을 참기가 어려울적마다...
내 마음은 순천의 자연생태공원의 갈대열차에 마음을 싣고 한없이 그 파란 갈대 사이 사이를 달리고 있다.
아니 달리고 싶다. 내 마음의 나래를 펴고...
기대는 은혜를 담는 그릇이다. 날마다 내 마음의 그릇을 비우고 깨끗히 하자. 그리고 그 분을 바라보자.
이 다음에 칠면초(Suaeda Japonica)를 만날 때 즈음엔 나의 모습도 좀더 주님을 닮은 아름답게 변화된 모습으로
만나야지. 나의 연약함의 목록이 좀 더 줄어들고 열등감과 비판의 시각을 바꾸고 경쟁과 비교의식이 없이 말이다.
그래야 그 바닷가에 서식하는 한해살이 식물을 대면하기가 부끄럽지 아니하지 않겠는가? 그 식물은 때마다 완벽
하게 적응하고 변모하는데 오래 믿어도 변화 없는 나의 삶이 처량해 보인다.
"당신은 무진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씌여 있었다.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 <무진기행>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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